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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 #1

CUT 2006/08/01 02:52
 국민학생이 되자 나에게도 책상이 생겼다.
 아주 평범한 일자형 편수 책상이었다. 중앙의 큰 서랍과 오른쪽으로 세 개의 서랍이 딸려있었고, 책장과 더불어 작은 형광등이 딸려있는 신제품이었다. 내 책상은 안방 귀퉁이에 누나의 책상과 나란히 놓였다. 덕분에 누나와 나는 나란히 앉아 문제집을 풀곤 했다. 물론 공부에 소질이 없는 나는 누나가 문제를 풀 동안, 문제집 뒤쪽의 답안지를 뒤적거리느라 바빴다.
 덕분에 나의 평범한 책상은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도 그대로였다. 책상 위에 지긋이 앉아있는 경우가 거의 없었으므로, 큰 불편은 느끼지 못했다. 책상 위는 온통 어질러져 있기 일쑤였고, 책상서랍은 쓰레기통을 방불케 했다. 어쨌거나, 그 지긋지긋한 책상에도 조금은 마음이 드는 곳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오른쪽 서랍 세 번째칸 아래쪽에 위치한 10센티미터의 빈 공간이었다.
 정확히 언제 그 공간을 발견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 당시엔 어째서 이런 공간을 만들어 놓았을까에 대한 의문도 가지지 않았다. 그저 뭔가를 그곳에 숨기기에 열중했을 뿐이다. 가끔씩은 비디오 테이프를, 가끔씩은 도색 잡지를 들이기도 했다. 중학교때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이래로는 담배와 라이타를 주로 숨기곤 했다. 그곳은 나에게 있어서 가장 비밀스런 공간이었다.

 물론, 위기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어느 날 시험으로 보고 집으로 일찍 돌아오니 할머니가 나를 잡아 세웠다. 시험을 빙자하여 엉망진창으로 방치해둔 책상을 청소하다 담배를 발견했다는 것이었다. 난 적당한 변명거리를 찾기 위해 머리를 잽싸게 굴려봤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그 위기의 순간에 고작 생각해 낸 것이 친구의 것을 잠시 맡아 두었노라 둘러댄 것이다. 누가 봐도 터무니없는 거짓말이었지만, 할머니는 적당히 속아넘어가 주었다. 할머니는 담배는 몸에 나쁘다며, 아주 잠깐동안 나를 훈계했다. 그리곤 담배는 자신이 가지겠노라고 선언하고 나를 놓아주었다. 아주 잠깐동안 1300원이라는 돈이 아깝다는 생각을 했지만, 별 도리가 없었다. 나는 방으로 들어와 숨을 돌리고 나의 비밀스런 공간의 안전을 점검했다. 이것저것 마구 집어 넣다보니 서랍을 열고 닫는 동안에 담배가 흘러나온 모양이었다. 다행히도 다른 것들은 모두 안전했다.
 그렇게 한 시간쯤 지났을까. 무척이나 담배가 당겨오던 그맘때쯤, 닫힌 문틈 사이로 담배냄새가 스며들었다. 방문을 열어보니 할머니가 배란다쪽 문틀에 비스듬히 기대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말보로 미디움이었다.
 아마 나는 멀리 떨어져 아주 잠깐동안 그 모습을 바라보았을 테다.

 할머니의 손가락 사이에 번들거리는 황색 필터. 쪼글쪼글한 주름이 가득한 할머니의 입술. 그 입술에 필터가 밀착될 때마다, 총알은 유난히 붉은 빛을 냈다. 짜글거리는 소리도 냈다. 배란다를 통해 들어오는 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할머니의 안경테와 바닥에 놓인 붉은 담뱃갑, 말보로. 할머니의 코와 입과 손가락 끝에서 허공으로 흩어지는 형용할 수 없는 백색의 담배연기... 아마 나는 멀리 떨어져 아주 잠깐동안 그 모습을 바라보았을 테다. 그러나 그 광경은 무엇보다도 선명하게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할머니는 평생동안 끽연의 자유를 누렸지만, 돌아가시기 1년 전 자궁암 선고를 받았다. 할머니는 암선고 이후 담배를 끊었고, 난 다시는 할머니가 담배를 태우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나중에 알게된 일이지만, 할머니를 진찰한 의사는 오진을 했다고 한다.

2006/08/01 02:52 2006/08/01 0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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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의 밤.

CUT 2006/07/11 05:50
  불면. 불면. 사실 '증'이라고 부르긴 싫다. 굳이 '증'이라 부르고 병으로 인정하기 싫은 것이다. 그저 오래된 습관으로 인해 만성화된, 일종의 습관일 뿐이다.

  어제, 아니 오늘은 일찍 누웠다. 일찍 이라고 해봐야 새벽 3시지만, 나의 생활패턴에서는 그렇다. 좀 이르다고 해야 옳다.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질끈. 째깍거리는 시계소리만 귓가를 맴돈다. 초침이 몇 바퀴나 돌고, 시침이 몇 도나 움직이고, 나는 눈을 질끈 감고 몇 번씩이나 돌아누웠다. 잠은 오지 않았다. 실로 불행한 일이다.  부질없는 객기로 망가진 몸은 계속해서 삐걱거렸다. 덕분에 나는 최소한 6개월에 한번쯤은 병원을 찾아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한 알에 오천원이 넘는 약을 무려 2년이 넘도록 먹었지만, 이미 내 몸은 완치될 수 없는 병에 걸려있었기 때문이다.  6개월마다 병원에 하는 거라곤 고작해야 20cc정도의 피를 뽑거나, 성의 없는 초음파 검사를 받는 정도였다. 그저 추이를 지켜보고, 조금은 안정된 몸의 상태를 계속해서 확인할 뿐이다. 나아질 수 있도록 처방을 받는 것도 아니니, 사실 병원을 간다는 것이 가끔씩은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나의 귀찮음과는 별개로 나의 부모님이나 주변사람들은 언제나 나의 '병원행'을 채근했음으로, 난 때가되면 병원으로 가서 검사를 받곤 했다. 올해는 바로 오늘. 오늘 피를 뽑기로 했다. 그래서 어젯밤 10시부터는 금식을 시작했다. 이런 날은 무엇하나 똑바로 할 수가 없다. 그저 새벽에 피우는 담배 몇 가치에 만족해야한다. 냉장고에 그득한 음식도, 수도꼭지만 틀면 콸콸 쏟아지는 물도, 모두 부질없는 것들이 되고 만다.


  새벽 2시가 넘어서자, 극심한 갈증을 견딜 수가 없었다. 더불어 니코틴이 부족으로 인해 모든 것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슬리퍼를 질질 끌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팔리아멘트 두가치를 피우며 나 자신을 위로했다. 그러나 바싹 마른 입안을 니코틴으로 떡칠을 하고 있자니 안타깝게도 기분은 더 나빠져 버렸고, 몇 번인가 침을 뱉고나니 목은 더 말라왔다. 집에 들어와 이를 닦고 몇 번씩이나 찬물로 입을 헹구며, 삼키고싶다. 삼키고싶다. 삼키고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곤 방으로 들어와 불을 끄고 누운 것이다.  잠은 오지 않았다. 어제 오후 3시에 일어났으니 잠이 올리가 없다. 난 핸드폰을 꺼내 알람을 맞췄다. 내일 검사 시간에 맞춰 병원에 가려면 8시엔 일어나야 했다. 알람을 맞추고 시간을 보니 벌써 시계는 4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자야한다. 고 생각했다. 핸드폰을 밀어두고 난 다시 잠을 청했다.  시계소리가 커져갔고, 눈은 어둠에 쉽게 적응했다. 벽지를 만지작거리고, 몸을 뒤척이고, 쌍욕을 하며 짜증을 내니, 더워진다. 선풍기를 켠다. 그러다 스탠드도 켠다. 그리곤 연애소설을 주장하는 무라카미 류의 시답잖은 사랑이야기들을 읽는다. 하나같이 슬프기 짝이 없는 그 책을 난 그저 누운 채로, 모두 읽어버리고 말았다. 옮긴이의 글과, 삽화와, 표지까지 다시 훑어보곤 나는 다시 잠을 청한다. 시계는 5시를 넘고, 내가 일어나야 할 시간은 3시간 앞으로 다가왔다. 슬슬 턱이 아파 오기 시작했다. 정말 이러다 죽어버리는게 아닐까. 나는 왜 이렇게 아픈 곳이 많을까. 베개를 몇 번씩이나 고쳐 베고 생각했다. 턱관절. 일명 악관절 장애일까. 잇몸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 드물게 침샘에 문제가 생기면 이렇게 아프다는데, 혹시 나의 침샘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 그때 바싹 마른 목구멍으로 조금의 침이 넘어가면서, 나는 조금은 위로 받는다.

  턱이 아파 오자 머리도 아파 온다. CT를 찍어봐야 하는 걸까. 턱이 먼저인지 머리가 먼저인지 갈증이 먼저인지 공복감이 먼저인지 아니면 부질없는 객기가 먼저인지 알 수가 없었다. 덜컥 겁이 났다. 어느 병원에 가야할까 생각했다. 큰 병원으로 가자. 서울대 병원이 악관절 장애는 직빵이라던데, 풍문으로는 돈이 만이 든다고 하던데, 자주가야 한다면 이왕이면 집과 가까운 마포 쪽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신촌세브란스로 갈까. 초진. 재진. 특진. 수술까지 하자고 하면 방학은 이미 끝나있을테다. 짜증이 났다. 왜 이러고 있어야 하는 걸까.  잠들면 좋을 텐데. 이런 개떡같은 생각도 좀 미뤄둘텐데. 그리고 조금은 편리하게 꿈이라도 꾸면서 비연결성의 극을 달리는 이야기 속에 풍덩 빠져 이유도 결과도 그로 인한 책임도 없는 세상 속에서 즐길 수 있을 텐데.....라고 생각했다. 결국 시계는 5시 50분을 넘어버렸다. 자야한다.


  씨팔.


2006/07/11 05:50 2006/07/11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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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물.

CUT 2006/03/02 04:16
그렇다. 진절머리가 난다.
오늘은 그것을 해야한다. 내일은 저것을 해야한다. 일주일 후에 있을 무엇을 준비해야하고, 한달후의 일을 걱정해야하고, 다음학기, 졸업, 결혼, 인생, 노후를 계획하며 반복되는 일상속에 풍덩- 하고 빠져있으면, 결국엔 숨이 막힌다. 물론 콧구멍 속으로 짠물이 쏟아져들거나, 눈앞에 흐려져 한치 앞도 분간할수 없어 공포감에 휩싸이는 것은 아니지만. 산다는 것은 그렇다.

그래서 떠나기로 마음 먹었다. 처음엔 지구의 크기를 몸으로 느껴보고 싶었다. 기차를 타자.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하는 러시아의 기차에 몸을 싣고 6박 7일 보드카로 연명해 보자. 고 마음 먹었다. 마음 먹었을 뿐이다. 몇일이 지나선, 카파도키아가 보고싶어졌다. 여차하면 스키를 배울수 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류독감 운운하는 뉴스 따윈 귀에 들리지도 않았다. 어쨋거나, 난 올해도 스키를 배울수 없었다. 카파도키아나 지중해는 머릿속에만 그렸을뿐이다.

확신은 없다. 별볼일 없는 기내식을 먹으며 시퍼런 하늘을 바라보면서도, 어떤 확신도 없었다. 그저 무언가 조금이라도 털어버리거나, 무언가를 조금이라도 주워담을수 있다면 좋겠다는 얄팍한 기대가 있었을 뿐이다.고작해야 6시간을 날아 도착한 곳은 방콕이었다.
난 양키들이 득시글한 카오산 로드를 걸었다. 그리곤 버스를 타고 하늘과 맞닿은 라오스 험한 산길를 달렸다. 캄보디아의 천년전의 돌에 심취하기도 했고, 어느 섬에선 개집같은 방갈로에서 도마뱀과 잠들기도 했다. 다분히 전투적으로, 모든 것에서 탈출 할수 있으리라는 일념하나로. 그렇게 20여일을 보냈다. 하지만 산다는 것은 그렇다. 가끔씩은 진절머리가 난다. 결국 내가 있어야 할 곳은 그곳이 아니었으니까. 결국 돌아가서 있을 수없이 많은 일들에 대한 걱정으로 머릿속을 가득 채우기 시작하는 것이다.

판단중지는, 안타깝게도 자발적으로 이루어지진 못했다. 개집같은 방갈로 덕분에 더욱더 심해져버린 열대의 감기는, 나를 자꾸만 어지럽게 만들었다. 물론 감기약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언제나처럼 바다를 마주하면 찾아오는 익숙한 현기증 이었을 것이다. 물론 그 바다의 스케일이 달라, 약간의 정도의 차이가 있었을 뿐이었을 것이다. 바닷가의 모래을 밟으며 걷는 동안 파도는 쉴세 없이 밀려 들었고, 그 파도가 내 발밑의 흙을 조금씩 훔쳐갔다. 내가 딛고 있는 땅은 그렇게 움직였고, 모래알과 조개껍데기가 파도에 쓸려가는 모습을 보고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내 몸은 균형감각을 잃곤했다. 나까지 파도에 휩쓸려버릴 듯이, 몸이 휘청거렸다. 나는 끝도없이 펼쳐진 바다의 광대함에 위축되어 버린것일까.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그리고 그 파도가, 결국은 나를 향해 몇번인가 삼켜버릴듯이 달려들었다. 그리고 풍덩- 하고 빠져, 결국엔 숨이 막힌다. 콧구멍 속으로 짠물이 쏟아져고, 눈앞에 흐려져 한치 앞도 분간할수 없어 공포감에 휩싸이고, 수영을 배우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되는 것이다.



씨발. 내가 여기서 죽는구나. 라고 생각해도 이미 때는 늦었다. 무중력. 발밑엔 아무것도 없고, 간신히 물밖으로 머리를 내밀어 보아도 어김없이 내 뒤에선 파도가 밀려오고 있었다.
몇 분인가 그런 생각들을 반복했다. 고작해야 20일여일의 짧은 여행의 말미에, 고작해야 인천에서 6시간 거리의 이 바다에서 난 죽는구나 생각했다. 다행스럽게도 잊지않은 것이 하나 있다면, 쉴세없이 입과 팔과 다리를 놀리는 것이었다. 어째서 그랬는지는 모른다. 산다는 것은 그렇다. 가끔씩 진절머리가 나도, 살아야하는 것이다.
그후로 몇 번인가 파도가 밀려들고, 간신히 엄지 발가락 하나가 모래위에 안착했을때 세상이 조금은 다르게 보였다.

그리고 몇 일이 지나고, 난 2006년의 겨울로 돌아왔다.
그리고 오늘은 그것을 해야한다. 내일은 저것을 해야한다. 일주일 후에 있을 무엇을 준비하고, 한달후의 일을 걱정하고, 다음학기, 졸업, 결혼, 인생, 노후를 계획하며 반복되는 일상속에 풍덩- 하고 빠져버렸다. 판단중지. 결국 산다는 것은 -- ---.


-이코-
2006/03/02 04:16 2006/03/02 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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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태.

CUT 2005/11/30 03:03
초저녁부터 시작된 술자리는 밤이 늦도록 계속되었다. 시간은 이미 새벽 2시를 훌쩍 넘어버린 후였다. 판단력이 흐려지는 걸까. 집안에 온통 가득한 이름 모를 컨트리음악이 듣기 좋아지고 있었다. 에어컨 바람에 실려 오는 기름내도 견딜만했다. 모든 것이 술의 힘이다. 방바닥에 너절하게 널린 카스빈병과 진로소주병은 시간을 거듭할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고 있었으니까.
집안을 온통 기름 냄새로 가득하게 만들었던 주인장의 특제 스팸구이와 군만두도 슬슬 바닥나고 있었다. 주인장은 벌떡 일어나 주방으로 달려가 과자 몇 봉지를 꺼내왔다. 술이 모자랄 것 같은데. 그만 먹어요. 내일 하루 보람되게 살고 싶어. 그러나 주인장의 손은 거침없다. 꺄드득. 골골거리는 소리와 함께 소주잔엔 말간 소주가 채워진다. 그리곤 자신의 술잔을 들고 나를 향해 웃어 보인다. 마셔마셔. 어쩔 수 없이 술잔을 들고 잔을 맞부딪힌다. 주인장은 술을 입안에 털어 넣고, 다시 창문 쪽으로 몸을 돌렸다. 형, 잔 받아야지. 주인장은 그제야 다시 내 쪽으로 몸을 돌려 앉는다. 뭐 있어요? 응. 조금만 기다려봐. 올 때가 됐거든. 주인장은 느끼한 웃음을 흘린다. 뭐가 있다는 걸까. 난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본다. 순간 건넛집의 불이 켜진다. 저 집말하는 거야? 불 켜졌네. 엇! 그래? 주인장은 벌떡 일어나더니 방안의 불은 끈다.
그리곤 12시쯤부터 잠을 청하고 있는 수험생을 흔들어 깨운다. 야야. 쇼타임이야. 엇! 그래요? 피곤하다며 먼저 눕는다던 수험생의 몸이 용수철처럼 침대에서 튀어 올랐다. 그리곤 주인장과 수험생은 한달음에 창가로 달려가 버렸다. 뭐야, 무슨 일인데? 난 그제야 술잔을 내려놓고 창가로 향한다. 오... 형 죽이는데요. 그지? 원래 이 시간쯤이면 들어오거든. 창가의 그들 사이에 머리를 끼워 넣으니 건넛집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가구라곤 공간박스 따위와 전신거울 정도가 전부인 이상한 집안. 뭐야. 아무것도 없네. 다시 바닥에 앉으려 돌아서는데 주인장이 내 팔을 잡아끌었다. 난 그제야 그들의 시야를 공유한다.
전라의 남녀가 집안을 활보하고 있었다. 둘은 몇 번인가 가볍고 웃고, 입술을 포겠다. 남자의 손이 여자의 등으로 가슴으로 허벅지로, 여자의 은밀한 곳으로 향하고, 여자의 고개가 꺾이고 몸이 틀어졌다. 발기된 남자의 그것과 출렁거리는 여자의 그것과, 밀고 당기는 그들의 몸짓을, 주인장과 수험생은 이미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뭐야 품위 없이. 주인장과 수험생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미동도 않고 창틀에 붙어 있다. 말은 그렇게 했어도 나의 시선은 자꾸만 창밖의 건넛집안 전라의 남녀에게로 향하고 있음을 부정할 순 없었다. 오늘은 제대론데. 주인장이 말했다. 남자 몸 좋다더니 별 볼일 없네. 수험생이 말했다. 잘 보여요? 내가 물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여자친구 였다. 어어. 그냥 마시고 있어. 별 재미는 없고. 얼마 안마셨지. 전화를 들고 있는 동안에도 내 시선은 자꾸만 엉뚱한 곳으로 향한다. 그래, 나도 사랑해. 내가 전화를 끊자, 주인장은 나를 슬쩍보고 웃는다. 저런걸 보고 있으면서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니. 흐흐. 수험생도 따라 웃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가슴속에 묘한 감정이 일고 있었다. 먼저 창밖의 모습에 눈을 때지 못하는 주인장과 수험생에게 연민의 감정이 시작되었다. 너저분한 관전평을 쏟아내는 그들의 입이, 그 좁은 창에 몸을 구기고 매미처럼 붙어있는 그들의 치열한 몸짓이 안타까웠다. 그리곤 창밖의 건넛집 두 사람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박하지만 그들은 자신만의 공간을 가지고, 사랑을 하고 있다는 것이 내심 부러웠다.

난 바닥에 앉아 카스 한잔을 따라내어 마셨다. 한잔을 다 비워갈때쯤, 두 사람 역시 혀를 끌끌차며 자리에 앉았다. 고게고게.. 방안이 안보이네.. 수험생이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다음에 또와. 쇼는 계속되는 거야. 주인장이 말했다. 형 나 독립할까봐. 내가 말했다. 너도 이쪽으로 와. 선릉공원도 있고 살만하다. 주인장이 말했다. 아니 원룸은 싫고, 난 아파트로 갈 거야. 주인장은 말도 안 된다는 듯 피식하고 웃었다.
2005/11/30 03:03 2005/11/30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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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9단.

CUT 2005/11/20 03:47
7년 열애 끝에 결혼을 결심하였을 때, 고양이 같은 여자친구와 2-3년간은 아이를 갖지 않기로 약속했다. 우린 아이 대신에 애완동물 한 마리를 키우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는데, 우리 같은 맞벌이 부부에겐 고양이밖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우리가 키우게 된 고양이는 흰색 페르시안 고양이와 종자를 알 수 없는 단모종 검은고양이 사이에서 태어난 녀석으로, 이름은 ‘돼지’였다. 세상에서 최고로 멋진 턱시도를 입은 고양이였다. 너무나도 멋진 털을 가진 녀석이었지만, 그 매력에 빠져 지낼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못했다. 아내가 임신을 하게 된 것이었다.
아내는 24시간에 육박하는 진통시간을 거쳐 ‘도진’이를 낳았다. 아내가 해산하고 몸조리를 시작할 때 쯤, 난 회사를 그만두었다. 왠지 그래야할 것 같았다. 아내의 임신 기간 동안 조금씩 도왔던 살림은, 자연스럽게 내 일이 되었다.
주위의 반대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래서 회사를 그만둔 이후에도 조금씩 일과 살림을 병행했었다. 그러나 살림은 하면 할수록 적성에 맞았다. 일은 하면할수록 나를 지치게 만들 뿐이었다. 회사에서 일할 때보다 불리한 입장에서 일들을 따내기 마련이었고, 물론 페이도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렇다보니 아내도 차차 내 입장을 이해하기 시작했고, 금전적으로 큰 부담이 없었던 우리는 자신의 위치를 고수하기로 했다. 아내는 출산휴가를 마치고 직장에 복귀했고, 난 집안 살림에 더욱 충성했다.

나의 주부생활의 가장 큰 위기는 도진이가 옹알이를 시작하면서였다. 도진이는 유난히 사람을 많이 가리는 편이었는데, 그 낯가림 속에 내가 포함되어 버렸던 것이었다. 만지면 울고, 달래다 지쳐 울게 내버려두면 더 낯가림이 심해져 나의 손길에 격렬히 저항했다. 하나같이 만지면 싫어하고 안 만져주면 삐지는, 마치 고양이 가족 사이에 내가 끼어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 하지만 주부된 도리로 극복해야했다.
그것은 나를 더욱 세심하게 만들었다. 나보다도 오래전부터 집안에 굴러다니던 가정의학사전 따위를 본가에서 공수하여 온가족의 건강상태를 체크했다. 물론 어머니가 몇 번쯤은 보셨었음직한 요리책 따위도 잊지 않았다. 인터넷 주부커뮤니티도 놓치지 않았다. 그렇게 2년이 흐르자, 난 누구보다도 훌륭한 프로 주부가 되어있었다.
이제 도진이의 표정과 변 색깔만 보면 어디가 어떤지 단박에 알 수 있게 되었고, 한손으로도 능숙하게 저민 송아지 고기에 빵가루를 바를 수도 있게 되었다. 아내가 원하는 화장실 타일상태를 유지시킬 수 있게 되고, 돼지의 발에 묻지 않는 싸고 훌륭한 배변토를 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고 지독한 돈 관리로 아내의 품위가 떨어지게 만들지도 않았으며, 한 달에 서너 번쯤의 저렴하면서 우아한 데이트 코스를 준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돼지와 도진이는 건강하게 자랐다. 아내, 아니 마누라도 언제나 만족스러워 했다. 자신의 일을 이해하면서 집안 살림을 도맡는 나에게 감사했다.

미국 주부들의 노동 가치는 연 1억3천만원에 이른다고 한다. 한국의 상황은 사뭇 다르지만, 최근 법원이 주부의 일당을 6만5천734원으로 산정하고, 가사노동의 노동 가치를 단순 육체노동이 아니라 특수한 조건에서 일하는 특별인부의 것으로 봐야 한다고 판결한 것은 분명히 고무적이다. 비로소 한국에서도 주부의 노동 가치를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같은 남자가 전업주부라고 하면 다들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그리곤 혀를 끌끌차고, 열심히 설명을 하면 할수록 사회무능력자로 낙인찍는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내가 전업주부가된 사연을 궁금해 한다. 그것은 뭔가 비극적인 사연이 숨겨져 있으리라는 얄팍한 기대심리다. 몇 살 먹지도 않은 놈이, 벌써 처자식이 딸렸고, ‘남자놈’이 되가지고 직업도 없이 집에서 살림을 한다는 것은 사회통념상 납득하기 힘들다는 걸까.

쌀쌀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가을이 오자 지난여름 교체한 소파의 천이 마음에 들지 않아, 몇 일 동안이나 심사숙고하여 천을 갈았다. 내친김에 거실 페브릭벽지도 따뜻한 느낌을 주는 벽지로 바꾸었다.
잠이 오는지 자꾸 보채는 도진이를 안고 소파에 길게 누워 잠을 청했다. 돼지가 몇 번인가 배위에 올라와 발로 꾹꾹이를 하고 내려갔다. 짧아진 해가 금방 산을 넘어갔고, 난 마누라를 위해 쌀을 씻어 안쳤다. 이 아름답고 값진 인생, 전업주부 남성에겐 예비군훈련 면제라도 시켜주어야 하는것이다.

희망사항에 대한 기록.
逼眞, 글은 글일뿐...
2005/11/20 03:47 2005/11/20 0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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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곡 장대포.

CUT 2005/11/11 00:42
분명히 어젯밤에, 그가 권하는 맥주한잔을 받아 마시지 않았던가. 부고는 슬프다기보다는 황당한 소식이었다. 전화를 붙잡고 엉엉 울며 정신없이 뭔가를 말하던 여자친구를 이끌고 장례식장에 들어섰을 땐, 이미 늦었다. 그래서 일까. 서둘러 나오느라 푹 뒤집어쓰고 나온 모자와, 밤 촬영에나 어울릴법한 두툼한 검은색 점퍼가 더욱 부끄러웠다.
경희의료원 장례식장 B13호. 빈소의 상황을 알리는 LED전광판은 꺼져있었다. 빈소는 황량했다. 그저 빈소주변에 마련된 소파 여기저기에, 아는 얼굴들이 드문드문 눈에 띄었을 뿐이다. 하지만 하나같이 침통한 표정의 그들에게 그 무엇도 물을 수 없었다. 사건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와 자리를 지키던 많은 이들은 이미 집으로 돌아간 후였다.
누군가가 식사를 권했다. 먹고 싶지 않았다. 국통에 한가득 들었을 육개장을 생각하니, 왠지 속이 좋지 않았다. 한참을 지하 여기저기를 서성였다. 소파에 나눠앉은 슬픈 표정의 동기생들을 보았다. 난 그들처럼 침울한 표정을 지을 수 없었다. 사후 약방문이란 이런 것인가. 촬영을 앞두고, 잠 한번 제대로 자보겠다며 핸드폰을 울리지 않게 설정했던 어젯밤의 내가 미웠다. 도망치고 싶었다. 난 밖으로 나와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담배를 피우는 동안, 길 건너편으로 웬 젊은 여자하나가 펑펑 우는 것을 보았다.

난 다시 지하로 내려와 울고 있는 여자친구를 달래주었다. 그녀에게 수없이 많은 위로의 말을 전했다. 하지만 내 혀끝에서 흩어지는 묘한 말들은, 끝없이 나의 공복감만을 자극했다. 난 뭐라도 먹어야한다며 그녀의 팔을 끌고 장례식장을 빠져나왔다. 담배라도 피우며 걸으려 담배 곽을 열어보았으나, 담배 곽은 이미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우린 살렘과 팔리아멘트를 찾아 골목골목을 헤매고 다녔다. 경희대 쪽으로 가면 양담배를 살 수 있을 것 같아 경희대 입구 쪽으로 계속 걸었다. 하지만 모두가 국산담배만을 팔고 있는 관계로 우린 밥부터 먹기로 했다. 우린 유명인들의 싸인이 벽에 잔뜩 붙어있는 허름한 분식집에 들어가 라면을 시켰다. 아침부터 라면이라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그 분식집의 라면은 맛있었다. 우린 면발과 국물까지 말끔하게 처리했다. 그리고 나오는 길에 KT&G의 타임 멘솔 한 갑과 레종 한 갑을 사들고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들로 장례식장은 분주했다. 부검, 영정. 무엇하나 도움을 줄 수 없는 말들만 오가고 있었다. 누구누구는 부검과 관련하여 이리저리 전화를 돌렸고, 누구누구는 영정 준비를 위해 어디론가 향했다. 난 간간히 오는 문상객들에게 육개장을 떠주거나, 깎아놓은 과일들을 접시에 옮겨 담곤 했다. 시간은 부질없이 흘렀다. 문득 빈소가 소란스러워 복도로 나와 보니 영정이 도착해 있었다. 사람들의 어깨가 들썩이고 있었다. 입 꼬리가 비틀어지고, 눈동자에 눈물이 고이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옷을 갈아입고 오겠노라고 장례식장을 빠져나왔을 때, 이미 시간은 오후 3시를 훌쩍 넘어 있었다. 장례식장에서의 시간은 묘하게 흘렀다. 비스듬히 쏟아지는 늦은 가을 햇살에 눈이 따가웠다. 순간 알 수없는 피곤이 몰려들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침대로 기어들어가 잠을 청했다. 단잠이었다. 오후 8시가 되어서야 눈이 떠졌다. 머리를 감고, 이빨을 닦고, 면도를 했다. 그리고 난 다시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북적거리고 있었다. 아침과는 달랐다. 화환도 네 개나 도착해 있었다. 빈소의 상황을 알리는 LED전광판엔 고인 장태원이란 빨간 글씨가 선명했다. 동기생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선배들, 후배들, 교수님들도 보였다.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접객실엔 앉을자리가 없었다. 빈소주변의 소파도 마찬가지였다. 빈소 앞에 도열해 빈소를 지키는 이들의 숫자도 만만치 않았다. 거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가끔 그 도열사이에 끼어 영정사진을 힐끔거리며 바라보거나, 수시로 드나들며 담배를 피우는 것뿐이었다. 영정속의 그는 웃고 있었다. 너무 기분 좋은 표정이라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그래도 그의 영정 앞에 대국 한 송이는 놓아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북적거리는 빈소 주변을 몇 시간이나 떠돌다가, 나와 나의 여자친구는 그의 영정 앞에 섰다. 짧은 기도를 했다. 최근 들어 나와 그녀의 사랑이야기 말고는 기도제목을 올려본 적이 없는 나와 그녀였다. 그리고 돌아서 상주들과 절을 했다. 아침에 길 건너에서 눈물을 펑펑 쏟던 젊은 여자가 상주자리에 앉아있었다. 불규칙적으로 깜빡거리던 그녀의 빨간 눈은 마치 LED전광판의 빨간전구 같았다.
태원이가 차려주는 저녁을 먹겠다며 고집을 부리던 여자친구와 접객실에 마주 앉자, 동기생들이 국과 밥을 준비해주었다. 밥을 반공기쯤 말아놓고, 입안에 떠 넣기 시작하자 후끈한 육개장 국물이 입안에 퍼졌다. 수육을 새우젓에 찍어 입안에 밀어 넣으니 입안은 순식간에 육즙과 침의 범벅이 되었다. 너무 맛있었다. 젠장, 왜 이렇게 맛있니. 난 흘려 말했다. 마주앉은 그녀는 애써 즐거운 표정을 지으며 입안에 꾸역꾸역 음식을 밀어 넣고 있었다. 우린 우리 앞에 놓인 접시들이 다 비워질 때까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밤이 깊어오자 우리 동기생들도 술을 마셨다. 북적거리는 접객실에서 나와, 주차장에 둘러앉아 소주잔을 돌리거나 맥주캔을 땃다. 새벽 2시, 집으로 향하는 택시안의 나는 적당히 취해있었다.

시간은 묘하게 흘렀다. 이상하게 흐르고 흐르고 흘러서 어느 사이엔가 장례식은 이미 막바지에 이르러있었다. 날밤을 꼬박 새우고 나니 예배가 시작되었다. 예배가 끝나고 나자, 영정이 들려나오고, 그 뒤를 따라 그의 관이 따라 나왔다. 짐을 치우는 이들을 도와주다, 우연히 그의 가방을 건네받았다. 가방끈은 뜯어지고, 여기저기 구멍이 난 그의 가방을 들고 있자니 기분이 묘했다. 어디로 옮겨야 할지 몰라 한참을 망설이다, 우리가 타고 갈 학교버스 맨 앞자리에 실어놓고 담배를 한대 꺼내 물었다. 목구멍이 탁 막혔다.
서울에서 홍성에 이르는 버스 안에서의 기억은 거의 없다. 아주 가끔 잠에서 깨어보면 검정색 점퍼에 침이 흘러있거나, 목과 허리가 심하게 아파 왔을 뿐이다. 그렇게 자다깨다를 반복했다. 그러다 버스의 엔진음이 잦아들었고, 우린 홍성의 화장장에 도착해 있었다. 버스에서 내리자 알 수 없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입안이 온통 서걱거리는 듯도 싶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냄새에 적응할 겨를도 없이 그의 관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화장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고작해야 2시간 정도가 걸렸을까. 화장이 끝나가자 사람들이 다시 모여들었다. 마스크를 한 두 사람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마스크를 쓰고 일하던 남자 하나에게 도톰한 흰 봉투를 건네며 고개를 숙였다. 마스크를 쓴 이도 슬쩍 눈웃음을 치며 머리를 끄덕여 화답한다. 다 보셨습니까? 마스크를 쓴 남자가 사람들을 향해 물었다. 아니,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소용없다. 타닥타닥타닥. 입자가 균일하지 않은 작은 알갱이가 어디론가 옮겨 담아졌다. 남자가 무언가를 누르자, 휑-하고 거친 기계음이 울렸다. 기계음과 함께 간헐적으로 타닥거리는 소리가 계속됐다. 저 앞에선 그의 아버지의 등이 보였다.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울음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그의 어깨는 점점 더 심하게 들썩거리고 있었다.

안면도 기지포 해수욕장에 도착했을 땐 이미 해가 기울어가고 있었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열과 행을 맞추어 바닷가를 걸었다. 바닷바람은 차갑긴 했지만, 바닥에 깔린 흰모래는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이었다. 한참을 걷다보니, 저 건너편에 영화를 찍고 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보였다. 거짓말 같았다.

그는 술을 좋아했다. 하도 열심히 먹기에, 누군가는 그를 ‘역곡 장대포’라고 불렀다. 마지막 순간까지 열정적이었던 그를 보낸 이들의 발걸음은 결코 가벼울 수 없었다.

역곡 장대포, 아니 장태원. 1981.07.30. ~ 2005.11.08.
2005/11/11 00:42 2005/11/11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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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가 세워져 있는 골목.

CUT 2005/11/02 00:19
철거가 시작된 후로 골목엔 아이들이 줄어들었다. 대신에 골목길엔 쓰레기들이 즐비해지기 시작했다. 작은 컵부터 시작해서 커다란 장롱까지 골목길에 쌓이기 시작하니 사실 길이라 부르기도 무엇했다. 쓸만한 물건들은 날이 바뀌면 없어지기도 했으나, 그것들이 없어진 만큼 쓸모없는 물건들이 길가에 버려졌다. 열받은 철거용역업체 직원이 빨간락카로 골목벽에 써놓은 ‘쓰레기버리는놈애미는창녀’라는 말이 무색했다.

그러던 어느날, 기타 하나가 골목길 어귀에 등장했다. 분홍색과 흰색 줄무늬가 그려진 유치한 색상의 기타는 어디 깨진 곳도 하나 없었다. 기타줄이 헐렁하게 늘어지긴 했어도 기타줄 6개가 말짱했다.

담장들은 벌써 다 무너지고, 유리조각과 쓰레기가 즐비한 골목길을 누비던 동네 꼬마들에게 기타는 기막힌 장난감이 되었다. 차마 집에 들고 가진 못하고, 줄을 퉁겨보며 폼을 잡았다. 어디서 보았는지 길가에 어퍼진 장롱위에 걸터앉아 다리를 꼬고 엉터리 코드를 잡고 줄을 퉁겨본다. 사실 기타보다 꼬마들의 입에서 더 큰 음악소리가 흘러나왔다. 기타가 골목길 한켠을 차지한 이후로 골목길엔 아이들 노는 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꼬마들은 학교가는 길에, 집에 돌아오는 길에, 또 두부를 사서 집에 돌아가는 길에 기타 한 두곡씩은 꼭 연주하고 갔다.
해가 떨어지면 기타소리와 아이들이 노는 소리는 잦아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이면 기타는 골목 안으로 몇 발짝이나 더 들어와 있었다. 아이들이 기타주변에 모여 연주를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기타는 골목 안쪽으로 들어왔다.

어느 날 저녁 동네 노인 하나가 그 기타를 발견하고는 버려진 의자위에 앉아 기타를 집어들고 조율을 시작했다. 늘어진 기타줄을 팽팽하게 만들고, 굳은살 박힌 손가락으로 코드를 잡았다. 소리는 점차 기타다운 소리를 내기 시작했으나, 노인은 계속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줄을 풀어보기도 하고, 감아보기도하고 이 줄, 저 줄 퉁겨보았으나 영 탐탁치않은지 한숨을 쉬었다. 한참을 그렇게 앉았다가 결국은 기타를 버리고 가버렸다.

다음날 다시 기타를 찾은 꼬마들은 밤새 바뀐 기타소리에 탄성을 질렀다. 골목길엔 한층 우아하지만 여전히 괴팍스러운 기타소리와 아이들의 노래 소리가 가득했다.

기타가 세워진 있는 골목 - 박현수

우리 골목엔
누군가 버린 기타가 있어 아이들은
차마 들고 가진 못 하여
저마다 노래나 한두 곡 하다간 간다
옆집 쓰레기통 앞쯤에서
울리던 기타는
이제 나의 자취방 앞까지 와서
오늘 하루
아이들의 노래는 공으로 들었다
얼마나 신기한 영혼들인가!
기타줄을 아무렇게나 두드려도
저들의 노래는
은핫물이 되어
오늘 하루 빈 골목을 씻어내고 있다


오늘 나는 온 종일
벽에다 귀를 바짝 붙이고 서서
괴팍스런 기타에 섞인
그들의 영혼을
찬찬히 찬찬히 걸러내고 있었다
2005/11/02 00:19 2005/11/02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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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촌 안락의자.

CUT 2005/10/31 13:39
그저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들로만 가득한 골목길을 두 시간쯤 헤매고 다닌 후였다. 문득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보니 늦은 오후 햇살을 한껏 머금은 라탄소재의 안락의자가 하나 보였다. 문이 붙어있던 자리엔 그 흔적들만 남아있었으므로 난 그 집의 마당 안으로는 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부터가 문제였다. 마당 안에 온통 어지럽게 흩어져있는 쓰레기와 더불어 싱크대, 커다란 서랍장이 내 앞을 가로 막았기 때문이었다. 더 들어갈까 말까 한참을 망설이다가, 난 서랍장을 옮겨보기로 했다. 바닥에 즐비한 쓰레기 틈으로 안정적으로 서있는 것이 무척이나 힘이 들었지만, 다행히 서랍장은 텅 비어있었으므로 의외로 쉽게 치울 수 있었다.
문 한짝, 유리 한장 없는 집이었지만, 집안에 들어서자 바람이 잦아들고 분주한 소음들이 사라졌다. 가까이 가서 보니 내 시선을 끌었던 안락의자는 꽤나 구식이었다. 의자는 전체적으로 동글동글한 모양이었다. 얇은 나무를 가로세로로 엮어 만든 격자무늬 등판을 보고 있노라니 어렸을 적 잘사는 친구 녀석 집 마루에 있던 의자가 기억났다. 어쨌거나 그 동글동글한 의자 언저리에서 반사된 늦은 오후 햇살은 그 의자를 더욱더 값 비싸보이게 만들고 있었다. 의자 뒤편엔 커다란 괘종시계가 걸려있었다. 시계바늘은 4시 10분을 가리키고 있었는데 멈춰진 시계추가 아니었다면 그 시간을 믿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의자와 시계만 뜯어놓고 보자면, 금방이라도 집주인이 돌아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난 잠시 머뭇거리다 왼쪽 벽에 2000년 6월 달력이 걸린 것을 보고서야 안락의자에 앉을 수 있었다. 찌찍찌직거리는 소리가 불안했지만 의자는 의외로 꽤나 튼실했고, 무엇보다 마음에 든 것은 시야였다. 얼추 언덕 꼭대기에 위치한 집이라 철거를 앞둔 동네가 한눈에 들어왔다. 창문마다 커다란 구멍이 뚫린 집들이 보였고, 이미 운행이 멈춰진 철도주변에서 나물을 캐고 있는 노인네들이 보였다. 아마 이 집에 살던 누군가도 심심할 때면 이 자리에 앉았을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철도 건너편 닭장 같은 아파트보다 운치가 있었지만, 철도주변에 봄나물을 캐던 노인네들이 내가 앉은 자리를 쳐다보며 손가락질을 하는 통에 난 그 집을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2005/10/31 13:39 2005/10/31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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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4 - LOOP

CUT 2005/10/30 00:14
찬바람이 분다. 산길을 걷고 있다. 산길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이 길가에 촘촘히 박힌 가로등이다. 그리고 가끔씩 보이는 벤치들. 춥다. 반바지와 반팔 티는 분명히 부적절하다. 발바닥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몇 번이나 벤치에서 쉬었지만, 발바닥의 통증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견딜 수 없는 것은 얼굴에 들이치는 찬바람이다. 바람이 불때마다 머릿속이 온통 덜덜 떨린다. 뼛속까지 시리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얼굴은 지금 봉지 속에 들어있으니까. 왼손에 들린 봉지는 계속해서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무언가 말소리가 들리기도 했지만, 알아들을 수 없다. 시끄럽다. 바닥에 비닐봉지를 패대기치고 몇 번인가 발로 밟았다. 물컹한 느낌과 함께 벌건 피가 발바닥에 묻어난다. 다행히 발바닥은 무사하다. 난 다시 걷기 시작했다. 또 바람이 분다. 찬바람이 뇌 속까지 파고든다. 골이 흔들린다. 몇 번이나 주춤거리게 된다. 쓰러지면 안 된다. 이 길 끝에 그곳이 있다는 걸 난 알고 있으니까. 그 곳에 가면 난 새로운 얼굴을 얻을 수 있다. 몇 번인가 멈춰 서길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검정 비닐봉지 속에서 내가 속삭인다. 날 버리지마. 그럴 때마다 몇 번인가 바닥에 비닐봉지를 패대기쳤다. 그리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가로등이 끝나있는 지점에 이르자,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 펼쳐졌다. 난 어둠속으로 걸어들어 간다. 발을 디딜 때마다 조금씩 적응이 된다. 보지 않아도 볼 수 있었다. 벌판의 여기저기엔 작은 봉분들만 있을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난 땅을 파기 시작했다. 버려야한다. 사람 머리만한 구멍을 파고, 난 비닐봉지를 털기 시작한다. 그러자 얼굴가죽이 쏟아지듯 바닥에 떨어진다. 나 버리지마. 니가 나 없이 살 수 있을 것 같아. 이 병신새끼. 흙 한줌을 입에 밀어 넣는다. 곧 조용해진다. 이미 그 얼굴은 내 얼굴이 아니었다. 아무런 미련도 없다. 난 미련 없이 구덩이를 흙으로 채운다. 곧 얼굴은 자취를 감춘다. 욕지거리도 들리지 않는다. 기분이 좋아졌다. 벌판에서 벗어나 걸어온 산길로 접어든다. 잠시 벤치에 앉아 쉬기로 했다. 휑하니 뚫린 얼굴로 불어드는 찬바람도 즐길만했다. 문득 눈앞에 반짝거리는 별을 보았다.
터미널에 도착해있다. 친구들과 후배들을 만나는 자리다. 사람들이 분주히 오가고 있다. 난 그 사이를 걸어간다. 친구들과 후배들은 하나같이 검은 정장을 입고 있어 그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쉽게 눈에 띄었다. 자기들 끼리 즐겁고 유쾌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난 그 쪽으로 걸어간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놀란 듯 쳐다본다. 친구중의 하나가 날 발견한다. 웃고 떠들던 그 얼굴이 일그러진다. 그리고 옆 친구에게 무언가 말한다. 옆 친구도 날 쳐다본다. 또 그 옆의 옆 친구도 날 쳐다본다. 그들의 얼굴은 순식간에 하나같이 불쾌한 표정으로 바뀐다. 난 다가간다. 그들은 냉정한 얼굴로 날 쳐다본다. 아무말 없이 날 바라보는 그들을 향해 난 웃어 보인다. 하지만, 난 얼굴이 없다. 열심히 설명한다. 하지만, 난 입이 없다. 손을 뻣어 가장 친한 친구의 팔을 잡는다. 손에 잔뜩 묻은 흙이 그의 옷에 묻는다. 후배들이 나를 끌어낸다. 형 얼굴이 그게 뭐예요. 중요한 자리인데. 얼굴 좀 어떻게 하고 오세요. 옷도 좀 좋은 걸로 입구요. 길가에 서서 멀어지는 그들의 모습을 바라본다. 반바지에 반팔티셔츠에 얼굴엔 구멍이 뻥 뚫려서 온몸이 덜덜 떨린다.
2005/10/30 00:14 2005/10/30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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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3 - 변기통살인마

CUT 2005/10/29 23:49
온통 흐릿한 와중에 거울속의 내 모습은 선명하다. 난 얼굴에 면도거품을 잔뜩 바르고, 거울 앞에 서있다. 수도꼭지가 열려있다. 뜨거운 물이 계속 흘러나온다. 하지만, 세면대를 넘쳐흐르는 법이 없다. 주변은 계속 흐려지지만, 거울속의 내 모습만은 또렷하다. 난 꼭 쥐어진 나의 오른손을 들여다본다. 면도칼 대신에 시퍼렇게 날이 선 식칼이 들려있다. 면도를 해야 한다. 난 식칼로 면도를 하기 시작한다. 고개를 반쯤 젖히고, 눈을 내리깔고. 최대한 조심해야한다. 얼굴에 닿는 식칼의 느낌이 불쾌하다. 식칼은 분명히 무섭도록 날카롭지만, 면도는 쉽지 않다. 칼날이 스치는 사이사이로 면도 거품이 없어지지만, 그 아래의 수염은 그대로다. 미간에 주름이 잡힌다. 입이 반쯤 열리고, 고개가 옆으로 조금 틀어진다. 혓바닥이 몇 번인가 나왔다 들어갔다를 반복한다. 바싹 마른 입술을 축인다. 화가 난다. 난 식칼을 내동댕이치고, 세수를 하기 시작한다. 뜨거운 물로 얼굴을 씻는다. 면도거품은 금방 씻겨진다. 하지만, 씻으면 씻을수록 이물스럽다. 문득 고개를 들어 거울을 보니, 온통 상처투성이인 얼굴을 발견한다. 식칼 탓인가. 길게 그어진 상처에서 피가 흐른다. 하지만 아프진 않다. 몇 번인가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상처를 유심히 들여다본다. 아프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렇게 피를 흘리고 있자니, 배가 고파졌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렸다. 현기증이 났다. 거실로 나와 냉장고를 열어보았다. 온통 조미료뿐이다. 깨소금, 후추, 맛소금, 참기름, 몽고간장. 먹을 게 없다.
작은방 앞에 서있다. 살짝 열린 문틈으로 살찐 배가 보인다. 친구다. 먹음직스럽다. 무엇보다도 침대 밖으로 길게 늘어진 그의 두툼한 손바닥이 가장 먹음직스럽다. 배가 고프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무언가 먹어야한다. 오른손엔 면도하던 식칼이 들려있다. 난 방문을 열고 들어선다. 친구는 깊이 잠들어 있다. 난 친구의 엄지손가락을 살짝 잡아 그의 손을 들어본다. 먹음직스럽다. 푸짐하다. 친구의 손목에 식칼 끝을 가져다 댄다. 단칼에 잘라내야 한다. 난 오른손을 번쩍 들어 그 손목을 내리친다. 하지만 노력한 보람도 없이 손목은 단칼에 잘려진다. 두부 같다. 게다가 피한방울 나지 않는다. 친구의 살찐 배는 아직도 변함없이 규칙적으로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하고 있다. 친구가 깨어나면, 화를 낼 것 같다. 난 재빨리 방을 빠져나온다.
가스레인지에 물을 올린다. 난 그 먹음직스러운 손을 집어넣는다. 맛소금과 후추로 밑간을 하고, 간장과 참기름을 넣고 졸인다. 맛있는 냄새가 코를 찌른다. 행복하다. 배에서는 계속해서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나고 있지만, 조금만 참으면 된다. 순식간에 간장과 참기름은 졸아든다. 난 손을 재빨리 그릇에 옮겨 담고, 깨소금을 뿌린다. 그리고 먹기 시작한다. 맛있다. 행복하다. 손에 미끈한 기름이 묻어난다. 접시위엔 순식간에 뼈만 남았다. 난 배란다 창문을 열고, 뼈를 창밖으로 던져버린다. 그때, 작은방 문이 열리고 친구가 다가온다. 자기 손목을 누가 먹어버렸다고 화를 내기 시작한다. 난 거짓말을 하기 시작한다. 난 모르는 일이야. 친구의 눈이 가스레인지 위를 향한다. 그의 눈은 아직도 열기가 남아있는 프라이팬을 지나, 조리대위에 늘어선 조미료들로 행한다. 그리고 다시 나에게로 향한다. 친구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진다. 난 뒷걸음질 치다 배란다 창밖으로 떨어지고 만다. 화단에 떨어져 주변을 둘러보니 온통 뼛조각이 즐비하다. 몸을 추스르고 있는 찰나, 거대한 살덩이가 내 위로 떨어지고 있다. 친구다.
2005/10/29 23:49 2005/10/29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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