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의 밤.

CUT 2006/07/11 05:50
  불면. 불면. 사실 '증'이라고 부르긴 싫다. 굳이 '증'이라 부르고 병으로 인정하기 싫은 것이다. 그저 오래된 습관으로 인해 만성화된, 일종의 습관일 뿐이다.

  어제, 아니 오늘은 일찍 누웠다. 일찍 이라고 해봐야 새벽 3시지만, 나의 생활패턴에서는 그렇다. 좀 이르다고 해야 옳다.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질끈. 째깍거리는 시계소리만 귓가를 맴돈다. 초침이 몇 바퀴나 돌고, 시침이 몇 도나 움직이고, 나는 눈을 질끈 감고 몇 번씩이나 돌아누웠다. 잠은 오지 않았다. 실로 불행한 일이다.  부질없는 객기로 망가진 몸은 계속해서 삐걱거렸다. 덕분에 나는 최소한 6개월에 한번쯤은 병원을 찾아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한 알에 오천원이 넘는 약을 무려 2년이 넘도록 먹었지만, 이미 내 몸은 완치될 수 없는 병에 걸려있었기 때문이다.  6개월마다 병원에 하는 거라곤 고작해야 20cc정도의 피를 뽑거나, 성의 없는 초음파 검사를 받는 정도였다. 그저 추이를 지켜보고, 조금은 안정된 몸의 상태를 계속해서 확인할 뿐이다. 나아질 수 있도록 처방을 받는 것도 아니니, 사실 병원을 간다는 것이 가끔씩은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나의 귀찮음과는 별개로 나의 부모님이나 주변사람들은 언제나 나의 '병원행'을 채근했음으로, 난 때가되면 병원으로 가서 검사를 받곤 했다. 올해는 바로 오늘. 오늘 피를 뽑기로 했다. 그래서 어젯밤 10시부터는 금식을 시작했다. 이런 날은 무엇하나 똑바로 할 수가 없다. 그저 새벽에 피우는 담배 몇 가치에 만족해야한다. 냉장고에 그득한 음식도, 수도꼭지만 틀면 콸콸 쏟아지는 물도, 모두 부질없는 것들이 되고 만다.


  새벽 2시가 넘어서자, 극심한 갈증을 견딜 수가 없었다. 더불어 니코틴이 부족으로 인해 모든 것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슬리퍼를 질질 끌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팔리아멘트 두가치를 피우며 나 자신을 위로했다. 그러나 바싹 마른 입안을 니코틴으로 떡칠을 하고 있자니 안타깝게도 기분은 더 나빠져 버렸고, 몇 번인가 침을 뱉고나니 목은 더 말라왔다. 집에 들어와 이를 닦고 몇 번씩이나 찬물로 입을 헹구며, 삼키고싶다. 삼키고싶다. 삼키고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곤 방으로 들어와 불을 끄고 누운 것이다.  잠은 오지 않았다. 어제 오후 3시에 일어났으니 잠이 올리가 없다. 난 핸드폰을 꺼내 알람을 맞췄다. 내일 검사 시간에 맞춰 병원에 가려면 8시엔 일어나야 했다. 알람을 맞추고 시간을 보니 벌써 시계는 4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자야한다. 고 생각했다. 핸드폰을 밀어두고 난 다시 잠을 청했다.  시계소리가 커져갔고, 눈은 어둠에 쉽게 적응했다. 벽지를 만지작거리고, 몸을 뒤척이고, 쌍욕을 하며 짜증을 내니, 더워진다. 선풍기를 켠다. 그러다 스탠드도 켠다. 그리곤 연애소설을 주장하는 무라카미 류의 시답잖은 사랑이야기들을 읽는다. 하나같이 슬프기 짝이 없는 그 책을 난 그저 누운 채로, 모두 읽어버리고 말았다. 옮긴이의 글과, 삽화와, 표지까지 다시 훑어보곤 나는 다시 잠을 청한다. 시계는 5시를 넘고, 내가 일어나야 할 시간은 3시간 앞으로 다가왔다. 슬슬 턱이 아파 오기 시작했다. 정말 이러다 죽어버리는게 아닐까. 나는 왜 이렇게 아픈 곳이 많을까. 베개를 몇 번씩이나 고쳐 베고 생각했다. 턱관절. 일명 악관절 장애일까. 잇몸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 드물게 침샘에 문제가 생기면 이렇게 아프다는데, 혹시 나의 침샘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 그때 바싹 마른 목구멍으로 조금의 침이 넘어가면서, 나는 조금은 위로 받는다.

  턱이 아파 오자 머리도 아파 온다. CT를 찍어봐야 하는 걸까. 턱이 먼저인지 머리가 먼저인지 갈증이 먼저인지 공복감이 먼저인지 아니면 부질없는 객기가 먼저인지 알 수가 없었다. 덜컥 겁이 났다. 어느 병원에 가야할까 생각했다. 큰 병원으로 가자. 서울대 병원이 악관절 장애는 직빵이라던데, 풍문으로는 돈이 만이 든다고 하던데, 자주가야 한다면 이왕이면 집과 가까운 마포 쪽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신촌세브란스로 갈까. 초진. 재진. 특진. 수술까지 하자고 하면 방학은 이미 끝나있을테다. 짜증이 났다. 왜 이러고 있어야 하는 걸까.  잠들면 좋을 텐데. 이런 개떡같은 생각도 좀 미뤄둘텐데. 그리고 조금은 편리하게 꿈이라도 꾸면서 비연결성의 극을 달리는 이야기 속에 풍덩 빠져 이유도 결과도 그로 인한 책임도 없는 세상 속에서 즐길 수 있을 텐데.....라고 생각했다. 결국 시계는 5시 50분을 넘어버렸다. 자야한다.


  씨팔.


2006/07/11 05:50 2006/07/11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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