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상.

CUT 2006/12/23 00:28

안개구간은 계속 되었다. 처음의 놀라움도 잠시다. 뭐든지 반복되기 시작하면 그렇다. 결국 우린 지루해졌다. 잠을 쫓기위한 대화는 계속되었지만, 시간을 거듭할 수록 그 대화는 논점에서 벗어났고 결국 우리의 일상과, 우리의 세계와, 우리의 존재와는 상관없는 피상적이고 추상적인 대화로 옮아갔다. 결국 우린 대화를 중지한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창을 적당히 내리고 바쁜 숨쉬기를 계속한다. 찬바람이 들이닥쳐도 졸음은 가시지 않았다. 기나긴 터널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하면 이내 잡음을 동반한 정적이 찾아왔고, 휴계소에서 구입한 500ml 생수는 금방 바닥을 드러냈다.


바닷가엔 아무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새찬 바람이 불었고, 바람이 남긴 흔적만이 모래위에 그득했다. 우린 조심스럽게 그 위를 걸었다. 몸을 잔뜩 웅크리고, 바람 사이를 파고 들었다. 바다와 하늘은 맞닿아 있어, 마치 우리는 절벽위에 서있는 것 같았다. 절벽의 경계는 적당한 간격을 두고 우리와 멀어지고 가까워졌다. 새찬 바람이 귓바퀴를 흘러 지나치며 요란한 소리를 내고, 바람은 우리가 걸어온 흔적을 지워가고, 새찬 파도는 찝찔한 소금기를 실어왔다.

문득, 두려워 졌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소리를 지르고, 과장된 동작을 취해보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이다. 시간은 새벽 4시를 훌쩍 넘어버렸고, 우리는 그 절벽 앞에 혼자였다. 저마다 무슨생각을 했는지 알 길이 없었다.

2006/12/23 00:28 2006/12/23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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