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 #2

CUT 2007/01/10 15:31

귓구멍에 이어폰을 쑤셔넣었다. 업무용 창들을 작업표시줄에 구겨넣고, 미디어플레이어를 실행한다. 그리고 요한 스트라우스 2세의 봄의 소리 왈츠를 재생 시킨다. 리타 슈트라이히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때린다. 아니 찌른다. 나쁘지 않았다. 볼륨을 올리고, 남은 이어폰을 낀다. 머릿 속은 리타 슈트라이히의 목소리로 차고 넘친다. 1200미리 사무용 책상은 섬이되고, 포커싱이 틀어진 17인치 모니터는 창이된다. 고립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사무실에 하루종일 울려대는 전화벨소리도, 이리저리 오가는 사람들의 발소리도, 히터소리도 모두 지워진다. 문득 로레타 럭스의 사진들이 생각났다. 나는 그녀의 사진을 모니터 위에 띄워 본다. 벌판에 모로 누운 머리가 큰 여자아이의 눈동자가 선명하다. 아이는 홀로 벌판에 누웠지만, 그 선명한 눈동자로 하여금 장면은 순간순간 확장된다. 덕분에 외로와보이지 않는다. 아이와 내사이에, 17인치 모니터와 나 사이에 묘한 공간이 설정되고 장면은 머릿속에서 끝없이 팽창한다. 안드로메다가 우리의 상상보다 다섯배 정도는 컷던 것 처럼, 이 아이의 눈빛은 이 아이의 벌판은 이 아이의 눈동자의 깊이는 끝없이 끝없이 확장된다. 벌판의 아이와 로레타 럭스의 셀프포트레이트와 리타 슈트라이히의 목소리는 시간이 갈수록 견고하게 엮여진다. 애초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머릿속은 난장판이 되고만다. 귓구멍이 얼얼해지고, 시계는 11시 50분을 가르킨다. 나는 식권을 챙겨 엘리베이터에 탄다.

2007/01/10 15:31 2007/01/10 15:31
top

Trackback Address :: http://xxycho.net/ttnew/trackback/24

Write a comment


1 ... 16 17 18 19 20 21 22 23 24 ... 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