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곡 장대포.

CUT 2005/11/11 00:42
분명히 어젯밤에, 그가 권하는 맥주한잔을 받아 마시지 않았던가. 부고는 슬프다기보다는 황당한 소식이었다. 전화를 붙잡고 엉엉 울며 정신없이 뭔가를 말하던 여자친구를 이끌고 장례식장에 들어섰을 땐, 이미 늦었다. 그래서 일까. 서둘러 나오느라 푹 뒤집어쓰고 나온 모자와, 밤 촬영에나 어울릴법한 두툼한 검은색 점퍼가 더욱 부끄러웠다.
경희의료원 장례식장 B13호. 빈소의 상황을 알리는 LED전광판은 꺼져있었다. 빈소는 황량했다. 그저 빈소주변에 마련된 소파 여기저기에, 아는 얼굴들이 드문드문 눈에 띄었을 뿐이다. 하지만 하나같이 침통한 표정의 그들에게 그 무엇도 물을 수 없었다. 사건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와 자리를 지키던 많은 이들은 이미 집으로 돌아간 후였다.
누군가가 식사를 권했다. 먹고 싶지 않았다. 국통에 한가득 들었을 육개장을 생각하니, 왠지 속이 좋지 않았다. 한참을 지하 여기저기를 서성였다. 소파에 나눠앉은 슬픈 표정의 동기생들을 보았다. 난 그들처럼 침울한 표정을 지을 수 없었다. 사후 약방문이란 이런 것인가. 촬영을 앞두고, 잠 한번 제대로 자보겠다며 핸드폰을 울리지 않게 설정했던 어젯밤의 내가 미웠다. 도망치고 싶었다. 난 밖으로 나와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담배를 피우는 동안, 길 건너편으로 웬 젊은 여자하나가 펑펑 우는 것을 보았다.

난 다시 지하로 내려와 울고 있는 여자친구를 달래주었다. 그녀에게 수없이 많은 위로의 말을 전했다. 하지만 내 혀끝에서 흩어지는 묘한 말들은, 끝없이 나의 공복감만을 자극했다. 난 뭐라도 먹어야한다며 그녀의 팔을 끌고 장례식장을 빠져나왔다. 담배라도 피우며 걸으려 담배 곽을 열어보았으나, 담배 곽은 이미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우린 살렘과 팔리아멘트를 찾아 골목골목을 헤매고 다녔다. 경희대 쪽으로 가면 양담배를 살 수 있을 것 같아 경희대 입구 쪽으로 계속 걸었다. 하지만 모두가 국산담배만을 팔고 있는 관계로 우린 밥부터 먹기로 했다. 우린 유명인들의 싸인이 벽에 잔뜩 붙어있는 허름한 분식집에 들어가 라면을 시켰다. 아침부터 라면이라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그 분식집의 라면은 맛있었다. 우린 면발과 국물까지 말끔하게 처리했다. 그리고 나오는 길에 KT&G의 타임 멘솔 한 갑과 레종 한 갑을 사들고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들로 장례식장은 분주했다. 부검, 영정. 무엇하나 도움을 줄 수 없는 말들만 오가고 있었다. 누구누구는 부검과 관련하여 이리저리 전화를 돌렸고, 누구누구는 영정 준비를 위해 어디론가 향했다. 난 간간히 오는 문상객들에게 육개장을 떠주거나, 깎아놓은 과일들을 접시에 옮겨 담곤 했다. 시간은 부질없이 흘렀다. 문득 빈소가 소란스러워 복도로 나와 보니 영정이 도착해 있었다. 사람들의 어깨가 들썩이고 있었다. 입 꼬리가 비틀어지고, 눈동자에 눈물이 고이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옷을 갈아입고 오겠노라고 장례식장을 빠져나왔을 때, 이미 시간은 오후 3시를 훌쩍 넘어 있었다. 장례식장에서의 시간은 묘하게 흘렀다. 비스듬히 쏟아지는 늦은 가을 햇살에 눈이 따가웠다. 순간 알 수없는 피곤이 몰려들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침대로 기어들어가 잠을 청했다. 단잠이었다. 오후 8시가 되어서야 눈이 떠졌다. 머리를 감고, 이빨을 닦고, 면도를 했다. 그리고 난 다시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북적거리고 있었다. 아침과는 달랐다. 화환도 네 개나 도착해 있었다. 빈소의 상황을 알리는 LED전광판엔 고인 장태원이란 빨간 글씨가 선명했다. 동기생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선배들, 후배들, 교수님들도 보였다.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접객실엔 앉을자리가 없었다. 빈소주변의 소파도 마찬가지였다. 빈소 앞에 도열해 빈소를 지키는 이들의 숫자도 만만치 않았다. 거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가끔 그 도열사이에 끼어 영정사진을 힐끔거리며 바라보거나, 수시로 드나들며 담배를 피우는 것뿐이었다. 영정속의 그는 웃고 있었다. 너무 기분 좋은 표정이라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그래도 그의 영정 앞에 대국 한 송이는 놓아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북적거리는 빈소 주변을 몇 시간이나 떠돌다가, 나와 나의 여자친구는 그의 영정 앞에 섰다. 짧은 기도를 했다. 최근 들어 나와 그녀의 사랑이야기 말고는 기도제목을 올려본 적이 없는 나와 그녀였다. 그리고 돌아서 상주들과 절을 했다. 아침에 길 건너에서 눈물을 펑펑 쏟던 젊은 여자가 상주자리에 앉아있었다. 불규칙적으로 깜빡거리던 그녀의 빨간 눈은 마치 LED전광판의 빨간전구 같았다.
태원이가 차려주는 저녁을 먹겠다며 고집을 부리던 여자친구와 접객실에 마주 앉자, 동기생들이 국과 밥을 준비해주었다. 밥을 반공기쯤 말아놓고, 입안에 떠 넣기 시작하자 후끈한 육개장 국물이 입안에 퍼졌다. 수육을 새우젓에 찍어 입안에 밀어 넣으니 입안은 순식간에 육즙과 침의 범벅이 되었다. 너무 맛있었다. 젠장, 왜 이렇게 맛있니. 난 흘려 말했다. 마주앉은 그녀는 애써 즐거운 표정을 지으며 입안에 꾸역꾸역 음식을 밀어 넣고 있었다. 우린 우리 앞에 놓인 접시들이 다 비워질 때까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밤이 깊어오자 우리 동기생들도 술을 마셨다. 북적거리는 접객실에서 나와, 주차장에 둘러앉아 소주잔을 돌리거나 맥주캔을 땃다. 새벽 2시, 집으로 향하는 택시안의 나는 적당히 취해있었다.

시간은 묘하게 흘렀다. 이상하게 흐르고 흐르고 흘러서 어느 사이엔가 장례식은 이미 막바지에 이르러있었다. 날밤을 꼬박 새우고 나니 예배가 시작되었다. 예배가 끝나고 나자, 영정이 들려나오고, 그 뒤를 따라 그의 관이 따라 나왔다. 짐을 치우는 이들을 도와주다, 우연히 그의 가방을 건네받았다. 가방끈은 뜯어지고, 여기저기 구멍이 난 그의 가방을 들고 있자니 기분이 묘했다. 어디로 옮겨야 할지 몰라 한참을 망설이다, 우리가 타고 갈 학교버스 맨 앞자리에 실어놓고 담배를 한대 꺼내 물었다. 목구멍이 탁 막혔다.
서울에서 홍성에 이르는 버스 안에서의 기억은 거의 없다. 아주 가끔 잠에서 깨어보면 검정색 점퍼에 침이 흘러있거나, 목과 허리가 심하게 아파 왔을 뿐이다. 그렇게 자다깨다를 반복했다. 그러다 버스의 엔진음이 잦아들었고, 우린 홍성의 화장장에 도착해 있었다. 버스에서 내리자 알 수 없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입안이 온통 서걱거리는 듯도 싶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냄새에 적응할 겨를도 없이 그의 관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화장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고작해야 2시간 정도가 걸렸을까. 화장이 끝나가자 사람들이 다시 모여들었다. 마스크를 한 두 사람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마스크를 쓰고 일하던 남자 하나에게 도톰한 흰 봉투를 건네며 고개를 숙였다. 마스크를 쓴 이도 슬쩍 눈웃음을 치며 머리를 끄덕여 화답한다. 다 보셨습니까? 마스크를 쓴 남자가 사람들을 향해 물었다. 아니,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소용없다. 타닥타닥타닥. 입자가 균일하지 않은 작은 알갱이가 어디론가 옮겨 담아졌다. 남자가 무언가를 누르자, 휑-하고 거친 기계음이 울렸다. 기계음과 함께 간헐적으로 타닥거리는 소리가 계속됐다. 저 앞에선 그의 아버지의 등이 보였다.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울음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그의 어깨는 점점 더 심하게 들썩거리고 있었다.

안면도 기지포 해수욕장에 도착했을 땐 이미 해가 기울어가고 있었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열과 행을 맞추어 바닷가를 걸었다. 바닷바람은 차갑긴 했지만, 바닥에 깔린 흰모래는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이었다. 한참을 걷다보니, 저 건너편에 영화를 찍고 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보였다. 거짓말 같았다.

그는 술을 좋아했다. 하도 열심히 먹기에, 누군가는 그를 ‘역곡 장대포’라고 불렀다. 마지막 순간까지 열정적이었던 그를 보낸 이들의 발걸음은 결코 가벼울 수 없었다.

역곡 장대포, 아니 장태원. 1981.07.30. ~ 2005.11.08.
2005/11/11 00:42 2005/11/11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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