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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CUT 2008/03/22 04:07
비가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런저런 고민따윈 접어버리고 빗속으로 파고 들어 온몸으로 스며드는 빗속에서 답답함따윈 씻어내고 싶었다. 그러나 희뿌연 황사가 계속되었고, 애초에 나란 인간은 그 빗속으로 파고들수 없으리라는 것을 명확히 깨닫고 있었으므로 나는 자꾸만 더, 더, 더 우울해 졌다. 우연한 기회에 술을 마시면 모든 감정들은 역전되어 자꾸만 나란 인간을 캐캐묵은 죽은 기억 속으로 빨려들게만 했으므로, 정말로 지금은 위험한 시기이다 생각했다.
오늘도 맥주 몇잔을 입안에 털어넣자, 모든 감정은 필요이상으로 우울함으로 수렴했다.바닥의 바닥의 바닥을 깨고 희뿌연 회색지대를 지나 검고 검은 울증으로 빠져드는 나 자신을 붙잡아 보려고 하면 할수록 나는 흔들렸다. 흔들리면 흔들릴수록 언젠가 지진을 경험했던 그 때처럼 생경함과 놀라움의 말미에 치명적인 울증이 등장했다. 울증은 날카로운 비수처럼 가슴팍에 날아들고, 나는 저항할 틈도 없이 내 몸을 울증에 맡길수 밖에 없다.






라고 쓰고 나는 껌뻑거리는 프롬프트에 압도되어 한참동안 김현철의 음악의 기대어있다. 프롬프트를 위로 올려 차분히 한줄한줄을 읽어보았다. 맥락없이 쏟아진 나의 울증을 보았다. 맥락없음에 울증은 배가되고, 몇번인가 ESC키를 눌러본다. 음악이 멈출뿐 텍스트는 사라지지 않는다.
2008/03/22 04:07 2008/03/22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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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모리스.

CUT 2008/02/28 04:05
부탁도 하지 않았는데, 형은 또 담배 두 보루를 사왔다. 필립모리스였다. 그날 밤 새벽 4시, 나는 목발을 짚고 집을 빠져나왔다. 건성으로 담배를 털고, 한가치를 꺼내 불을 질렀다.
몇 번의 심호흡 뒤에 찾아온 어마어마한 어지럼증. 혓바닥은 매운 연기에 마비되고, 입안엔 침이 고여왔다. 니코틴과 타르가, 혓바닥과 설태가 만나 견디기 힘든 불쾌감을 만들어 냈었으므로 나는 몇번이나 침을 뱉어야했다. 그러나 나는 와인을 시음하는 기분으로, 다시 심호흡한다. 그러나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필립모리스가 이런 맛이었던가? 세 가치를 연거푸 피우고 나니, 온몸에 힘이 빠진다.
천삼백원짜리 필립모리스의 맛이 어땠었는지, 하드케이스로 바뀌어 한국에서 생산되었던 필립모리스의 맛이 어땠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이제 그 맛도 기억나지 않는 나의 옛기호품을 기억하는 것이 나 자신이 아니라는 사실이 더 놀랄 뿐이다. 머릿속의 타임코스모스가 드디어 오작동하기 시작한걸까.
도무지 적응되지 않는 목발질을 하며,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차라리 편리한 인간이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자위하며.
2008/02/28 04:05 2008/02/28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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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

CUT 2008/01/21 04:04
껍데기만 남았다. 알맹이는 소진되어 거대한 동공만 남았다. 껍데기는 의외로 단단하여 그 사이로 빛따위는 통과할 수 없었으므로, 나는 자꾸만 동공 속에서 허우적 거렸다.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간다. 오늘은 눈이 오는구나.
2008/01/21 04:04 2008/01/21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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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이브.

CUT 2007/12/24 04:00

눈앞에 펼쳐진 일들은 아무렇게나 미뤄두고, 우린 광화문으로 갔다. 그러나 우린 밥집을 찾지 못해 광화문에서 무교동을 지나, 명동까지 걸어야했다. 별수없이 우린 맛없는 돈까스를 나눠먹고, 불쾌한 포만감을 지우기 위해 커피를 마셨다. 왕가위의 영화가 없었더라면, 우린 폭발해버렸을지도 모른다. 중경삼림을 보고, 우린 또 커피 한잔을 마셨다. 그리곤 앞에 서서 담배 몇 가치를 태웠다.
내가 그녀보다 앞서 걸었던가? 멋진 사진이다.
2007/12/24 04:00 2007/12/24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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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비.

CUT 2007/12/09 03:57
겨울비가 내렸다. 일기예보를 믿었던게 잘못 이었을까. 발걸음을 옮길때마다, 신발코와 뒷축이 축축해지고 이내 찬바람에 발끝이 시려왔다. 명동거리를 실속없이 걷다가, 우린 커피빈에 마주 앉아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그러나 하루치의 에너지는 이미 소진되어버린 후라, 몇분만에 카메라는 가방속에 쑤셔넣고 씁쓸한 커피와 매운 담배의 힘을 빌어 졸음과 싸워야 했다. 결국 우린 영화 이야기를 했던가? 명동은 어느날보다 한산했고, 우린 조금 이른 시간에 버스를 잡아탔다. 버스는 꽉막힌 시내를 느릿느릿 달렸으며, 그 와중에 눈이 오락가락하기 시작했다. 눈은 쌓이지 않았다.
2007/12/09 03:57 2007/12/09 0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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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멸.

CUT 2007/08/19 06:35

프롬프트의 명멸.
모든 것은 거기서 시작되었다. 가로가 되었든 세로가 되었든, 그 모양과 명멸의 주기에 차이가 있을지언정 그것이 가지는 의미는 언제나 명확하다. 오백삼십밀리세컨드를 주기로 하는 지금의 프롬프트. 어쨌거나 달라질 것은 없다. 무언가 적어야 한다. 엔터키와 함께 행갈이가되고 프롬프트가 제자리로 돌아오기까지 나는 무언가를 고민해야한다. 그래야 의미가 있다. 그러나 나는 검은바탕위의 그것에 쉽게 압도된다. 아니 압도된다고 느낀다. 결국 그것은 나 자신에 대한 도전이고 다짐이고, 또 세상을 향한 외침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떤 선문답. 결국 다 비슷비슷하고 고만고만한 재미없고 별볼일 없는 이야기들. 애초에 정답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무언가를 적어야한다는 강박증이 시작된지 몇십분이 흘렀다. 나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 1악장을 반복해서 들으며 애써 프롬프트를 외면한다. 그런 면에서 윈도우는 편리하다. 윈도우의 시대가 시작되고 프롬프트는 화려한 그래픽유저인테페이스의 뒷쪽 깊은 곳으로 숨어버렸다. 프롬프트를 통해 컴퓨터에 명령하던 시절은 가고 우린 마우스에 손을 얹고 마우스 커서에 집중할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이름만큼 훌륭하진 않지만 우리는 수많은 윈도우를 통해 쉽게 도망칠수 있게 되었다. 이른바 멀티테스킹은 그런면에서 위대하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강박증은 쉬 가시지 않는다. 어째서 나 자신에게 이토록 질문들을 던져야 하는가. 애초에 대답따위는 모른다. 그저 나 자신을 자극하는 여러가지 방법중에 하나를 선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컴퓨터앞에 구부정하게 앉아 무의미하게 시간을 축내며, 인생을 축내며 세상과 소통하고 있노라 소리친다. 자위한다. 그러나 그 누가 듣고있으랴.
결국 작업표시줄에 그득한 창목록에서 나는 처음의 그것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오백삼십밀리세컨드를 주기로하는 프롬프트와 마주한다. 프롬프트의 명멸. 모든 것의 시작은 거기서 부터다.

2007/08/19 06:35 2007/08/19 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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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풍.

CUT 2007/08/09 05:54

돌풍에 가까운 바람이 불고 있다. 벌써 몇시간째다.
몇일간의 기습적인 폭우 말미에 돌풍이 찾아왔다. 블라인드가 창에 부딪혀 요란한 소리를 내고, 방충망 사이를 들락이는 바람소리가 괴괴하다. 하늘에 가득한 구름은 달리듯 흘렀다. 그러나 바람은 창가를 맴돌뿐이다. 방안으로 파고들어 더위를 쫓아주진 못했다.

정작 밖의 바람은 그리 매섭지 않았다. 부는 바람도 차지 않았다. 미적지근한 바람이 온몸사이사이를 파고들었다.
담배를 꺼내물고 30분쯤 걸었을까. 습기까지 머금은 눅눅한 바람이 옷사이로 파고 들고 손은 금방 끈적해졌다. 손끝의 담배는 평소보다 몇배나 빨리 타들어갔다. 담배 네가치를 축내고, 나는 고양이 한마리와 인사했다. 전에도 몇번인가 본적이 있는 녀석이었다. 몇일전에는 새끼와 함께였는데, 오늘은 혼자였다. 녀석은 나를 한참 바라보다 차밑으로 기어들어가 앞발을 가슴깨에 감추고 한참동안 나를 바라보았다. 그 앞에 쪼그려 앉아 한참동안 녀석에게 추파를 던져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밤의 고양이는, 아니 밤의 고양이의 눈은, 정말로 예쁘다. 녀석들의 눈을 보고있으면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골룸의 대사가 떠오르곤 한다. 프로도를 무심히 바라보며 '빛을 쫓아 가지 마세요'라고 말했었지. 녀석이 고개를 돌릴때 몇번인가 붉은 안광이 뿜어져 나왔다. 새들이 아침을 알리고, 나는 결국 집으로 향했다.

방안의 온도는 몇도나 더 올라가 있는것 같았다. 창밖의 돌풍과 상관없이, 나는 선풍기를 켠다. 미풍.

2007/08/09 05:54 2007/08/09 0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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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듬.

CUT 2007/05/23 04:34

모든 리듬의 깨어졌다. 자의든 타의든 그리 되었다.
오후 네시가 되어서야 난 눈을 떳고, 얼마 남지 않은 하루와 마주 한다. 아주 늦은 아침식사를 하고, 난 방에 돌아와 컴퓨터를 켠다. 슈베르트의 죽음과 소녀를 걸어놓고, 한동안 서핑을 한다. 포탈사이트와 마주할때마다 나의 사고는 정지된다. 그러나 컴퓨터를 끄자, 나는 금방 목적을 상실한다.
음악이 필요하다. 씨디 플레이어에 일렉트릭 째즈 디바 볼륨 2번을 넣고, 플레이버튼을 눌러보았다. 역시나 무응답이었다. 씨디 플레이어의 상태가 불량하다는 사실은 이미 일년, 아니 한 이삼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
결국 나는 책을 집어든다. 재미없는 이야기들이 눈앞에 장황하게 펼쳐진다. 시덥잖은 수사와 별볼일 없는 서사는 지지부진하다.

결국 나는 씨디 플레이어를 분해하고 말았다. 뚜껑위의 먼지들을 털어내고, 나사 6개를 풀어낸다. 트레이 고정부를 뜯어내고 전원을 연결한후 구동부의 이상이 있는가를 살펴보았다. 벨트도 정상, 픽업도 정상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결국 픽업의 문제일까. 나는 면봉과 알코올을 찾아 온집안을 해집는다. 면봉은 찾았으나, 알코올은 찾지 못했다. 불행히도 과산화수소수만 눈에 띨뿐이었다. 가변저항을 휙 돌려버릴까 하다 꾹 참았다. 이왕 시작한 것 끝을 보자 싶어서, 면봉 끝에 물을 묻혔으나 차마 픽업 렌즈부에 갖다 대지는 못했다. 그런데 어째서 침을 바르고 싶은것인지 알길이 없다. 마른 면봉으로 렌즈를 닦아내니 그 투명한 렌즈에서 검은 것이 묻어난다.

전원을 다시 연결하고 테스트를 해볼까 했으나, 내 손은 벌써 케이스를 닫고 있었다. 어쨌거나 상관없다. 이미 고장나 있었으니까. 나사들을 잘 조이고, 전원을 다시 연결했다. 트레이를 열고, 손에 집히는 아무런 CD나 밀어 넣었다. 찍찍거리는 소리와 함께 몇초가 흐르고, 푸른 LED는 트랙수를 보여주었다. 아무런 표시도 없는 CD에서는 에고 래핑의 미드나잇 데자부가 흘러나왔다.
난 한참 동안 바닥에 누워 무비판적으로 음악을 들었다. 방안에는 음악만이 충만했다. 기계적 일상엔 지나친 감상따위가 끼어들지 않는다. 창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2007/05/23 04:34 2007/05/23 0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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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 #3

CUT 2007/01/24 15:24

검은 바다가 일렁였다. 매서운 바람과 함께 흰 거품을 머금었다. 윙윙거리는 바람소리에 파도 소리가 묻어왔다. 나도 모르게 미간에 주름이 잡힌다. 두꺼운 옷을 입은 연인은 부질없이 바닷가를 걸었고, 술취한 아이들은 불꽃놀이에 정신이 팔려있었다. 쉭쉭거리는 소리와 딱딱거리는 소리가 귀에 거슬려도 별 도리가 없었다.

우리는 한국에서 가장 길다는 모래사장을 가로 질러 지선을 깔았다. 50미터 짜리 하나와 30미터 짜리 하나와 10미터 짜리 두개 쯤을 더 연결하고나서야 우린 겨우 조명기를 켤수 있었다. 약한 쇳소리를 내며 HMI램프가 들어왔다. 1.2킬로와트 HMI조명기는 검은 바다를 빼꼼히 밝혔고, 우린 어둠 뒤에 숨었던 성난 파도를 볼수 있었다. 바람은 계속 거세졌지만, 술취한 아이들과 부질없이 바닷가를 거니는 연인들의 숫자는 쉽사리 줄어들지 않았다. 문득 조명기를 올려다보니, 미세한 모래먼지가 램프 앞쪽을 빠르게 가로지르고 있었다. 나는 몇번인가 발작적인 기침을 했다. 마스크를 내려 진득한 가래침을 뱉어내고, 팔리아멘트 한가치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게 내가 할수 있는 전부였다. 그리고 촬영은 계속됐다. 다음날 저녁 6시 반이 되어,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싣는 순간까지.

한달째 계속된 기침은 멈추지 않았다. 늦은밤이 되어 일상의 공간으로 돌아와도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다음날은 결근을 하고 말았다. 침대위에 시체처럼 쓰러져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며 몇번인가 타는듯한 갈증에 좀비처럼 주방까지 걸었을 뿐이다. 발작적 기침은 계속됐고, 싯누런 가래도 마찬가지 였다. 더불어 왼쪽 가슴이 뻐근해졌고, 사지는 굴신할수 없게 아파왔다. 입안이 까끌해 계속 물을 마셨지만, 개운함 따윈 느낄수 없었다. 눈알은 뻑뻑하고, 뼈 마디마디가 쑤셔왔다.

스노클자켓 속에 목까지 올라오는 두꺼운 니트를 받쳐입었었다. 알파카 목도리로 목을 칭칭 감고, 마스크를 하고 모자를 눌러썻었다. 청바지에 내복까지 입었으나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모래라는 것이 그렇다. 틈을 만들어주지 않아도, 어느세 파고든다. 동해의, 망상의 모래먼지가 온몸 구석구석 파고든 것이다. 나는 병원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주 늦은 아침식사를 하고 옷을 챙겨입었다. 찬바람이 끼쳐오자 발작적인 기침이 시작되었다. 나는 진득한 가래를 뱉어내고, 팔리아멘트 한가치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게 내가 할수 있는 전부였다. 그리고 삶은 계속됐다.

2007/01/24 15:24 2007/01/24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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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 #2

CUT 2007/01/10 15:31

귓구멍에 이어폰을 쑤셔넣었다. 업무용 창들을 작업표시줄에 구겨넣고, 미디어플레이어를 실행한다. 그리고 요한 스트라우스 2세의 봄의 소리 왈츠를 재생 시킨다. 리타 슈트라이히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때린다. 아니 찌른다. 나쁘지 않았다. 볼륨을 올리고, 남은 이어폰을 낀다. 머릿 속은 리타 슈트라이히의 목소리로 차고 넘친다. 1200미리 사무용 책상은 섬이되고, 포커싱이 틀어진 17인치 모니터는 창이된다. 고립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사무실에 하루종일 울려대는 전화벨소리도, 이리저리 오가는 사람들의 발소리도, 히터소리도 모두 지워진다. 문득 로레타 럭스의 사진들이 생각났다. 나는 그녀의 사진을 모니터 위에 띄워 본다. 벌판에 모로 누운 머리가 큰 여자아이의 눈동자가 선명하다. 아이는 홀로 벌판에 누웠지만, 그 선명한 눈동자로 하여금 장면은 순간순간 확장된다. 덕분에 외로와보이지 않는다. 아이와 내사이에, 17인치 모니터와 나 사이에 묘한 공간이 설정되고 장면은 머릿속에서 끝없이 팽창한다. 안드로메다가 우리의 상상보다 다섯배 정도는 컷던 것 처럼, 이 아이의 눈빛은 이 아이의 벌판은 이 아이의 눈동자의 깊이는 끝없이 끝없이 확장된다. 벌판의 아이와 로레타 럭스의 셀프포트레이트와 리타 슈트라이히의 목소리는 시간이 갈수록 견고하게 엮여진다. 애초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머릿속은 난장판이 되고만다. 귓구멍이 얼얼해지고, 시계는 11시 50분을 가르킨다. 나는 식권을 챙겨 엘리베이터에 탄다.

2007/01/10 15:31 2007/01/10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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