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1

CUT 2005/10/24 03:33
좁은 길을 달리고 있다. 쫓기고 있다. 돌아볼 겨를도 없다. 온통 괴성으로 가득하다. 뒤를 돌아보니 좀비들이 나를 쫓아오고 있다. 하나같이 머리가 벗겨지고, 입가엔 알 수 없는 노란 국물이 묻어있다. 무언가 소리를 내고 있지만 알아들을 수가 없다. 난 계속 해서 도망간다. 좁은 통로가 끝나자 무수히 많은 파티션과 그 사이사이엔 깨끗하게 정돈된 흰색 책상들이 즐비하다. 하지만 사람이라고는 나뿐이다. 모두가 좀비로 변해 버렸다. 난 알고 있다. 그래서 계속 도망가야 한다. 말끔하게 정리된 이 사무실에 어울리진 않지만, 그렇게 뛰고 있다. 내 뒤를 쫓는 좀비들도 그렇다. 조금씩 다르게 생긴 좀비들은 이상하게 똑같아 보인다. 느릿느릿하지만 무수히 많은 좀비들이 파티션 사이로,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온다. 커다란 사무실 모퉁이에 문 하나가 보인다. 문을 열고들 어가니 역시나 깨끗하게 정돈된 흰색 책상이 보인다. 밖과 다른 것은 편안해 보이는 가죽의자가 있다는 점이다. 난 재빨리 문을 잠그고 방안으로 들어온다. 발소리와 괴성소리가 가까워 온다. 문이 몇 번인가 들썩거리더니 나무 부서지는 소리가 난다. 사무실쪽 창문 틈으로 좀비들의 팔이 들어온다. 블라인드 사이로 머리를 내미는 녀석도 있다. 흰눈동자가 이리저리 굴러간다. 어딜 보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난 공포에 질려있다. 가죽 의자 뒤쪽으로 뒷걸음질친다. 결국 문은 부서진다. 좀비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온통 대머리에 입가에 노란 국물을 묻힌, 하나같이 똑같이 생긴 좀비들이 사무실안으로 들어온다. 책상위의 전자식 시계가 아홉시 이분을 알리며 묘한 알람소리를 낸다. 알람소리가 울리자 좀비들이 하나둘 멈춰 선다. 모두가 멈춰서는가 싶더니 고개를 들어 천정을 올려다본다. 고개를 몇 번 갸웃거리는 좀비도 있다. 그러다가, 하나가 ‘세상의 끝’이라고 나지막이 말한다. 그러자 그 옆의 좀비도, 똑같이 ‘세상의 끝’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옆의 좀비도, 그 뒤의 좀비도, 그 뒤의 옆의 좀비도 똑같이 말한다. 웅성거림이 온 사무실안을 가득매운다. 하지만 좀비들은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서 있다. 알람소리는 계속 커져간다. 좀비들이 말과 행동을 멈추고 돌덩이처럼 그 자리에 멈춰선 모습을 바라본다. 난 이제 안전하다. 문득 창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물소리다. 난 창 쪽으로 다가선다. 이상하게 멈춰있는 좀비들도 신경 쓰였지만 무엇보다도 창밖의 물소리에 더 마음이 쓰인다. 난 창문을 연다. 창밖엔 파도가 치고 있었다. 바다다. 여기가 세상의 끝이다. 파도가 창틀까지 넘실거린다. 물기가 얼굴에 튀긴다. 짜다. 알람소리는 계속된다. 세상엔 나만 홀로 남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창밖을 향해 난 소리친다. 세상의 끝.
2005/10/24 03:33 2005/10/24 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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