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9070034AM

분류없음 2009/09/07 00:00
싸늘한 바람이 불었다. 추석이 지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그런 날씨였다. 바람에 가을이 실려온다. 가을의 정취가, 가을의 느낌이, 가을의 추억이 온통 뒤범벅되어 나에게 달려들었다. 담배 한가치를 피우는 동안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을 휘젓는다. 머릿속에 조각난 기억들, 파편화된 일상들. 어긋난 관계와 뒤틀린 시간들.
그러다 언젠가 추석연휴에 했던 또라이 짓들이 생각났다. 그러니까 친구들과 모여 술을 마셨었다. 벌건 대낮에 인스턴트 탕수육 하나와 소주 몇병을 사가지고는 동네 공원에 둘러 앉아 낄낄거리며 술을 마셨었다. 저마다 담배 하나씩은 꼬라물고, 세상에 대해서 인생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그때도 지금만큼이나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을테다. 아니, 어쩌면 더 힘겨웠던가.
해가 지고 시퍼런 천공광만 남았을때쯤 우린 술을 다 마셨고, 목적없이 텅빈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사람도 차들도 서울을 떠나버린 서울은 밤거리는 비현실적으로 한산했다. 간간히 보이는 차들은 맹렬한 속도록 달렸고, 우리는 술에 취해 도로경계석 위를 위태롭게 걸었다.

그러니까 십년쯤 더 된, 이야기다. 어째서 그렇게 살았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우리는 그렇게 살았다. 그러다보니 시간이 흐르고, 한해가 지날때마다 한살씩 나이를 먹었고,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면서 스물이되고 서른이 되었다. 가끔씩은 청첩장을 받고, 친구들의 연봉을 들었다. 누군가는 아들을, 누군가는 딸을 낳았으며, 누군가는 죽었다.

나는 서늘한 바람에 놀라 케케묵은 기억한조각을 끄집어내어 안주거리처럼 잘근잘근 곱씹고 있었다. 하나같이 비현실적인 기억들, 나는 그 위에 서있다. 나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러다 문득 그 시절 친구라고 불렀던 사람들의 인생이 궁금해졌다. 그들은 아직 살아있는가. 그렇다면 어떤 모습인가. 무엇보다도, 그들중 하나 혹은 둘 정도는 나보다 못한 인생을 살고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치는 않았다. 죽었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살아있어야 한다. 그리고, 나보다는 조금 못한 삶을 살고 있었으면 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소식을 알수 없다. 알아보려고 노력하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그저 나를 위해, 나를 위로해줄 어떤 아주 작은 증거가 필요했으므로, 그저 그랬으면 했다. 물론 어떤 이는 그렇게 살고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다, '나'라는 인간에, '나'라는 인간의 퍼스날리티에, 다시 한번 놀라고 만다. 너무 한심해서 짜증이 났다. 나는 담배를 끄고 집에 올라가 설거지를 했다.
2009/09/07 00:00 2009/09/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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