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멸.

CUT 2007/08/19 06:35

프롬프트의 명멸.
모든 것은 거기서 시작되었다. 가로가 되었든 세로가 되었든, 그 모양과 명멸의 주기에 차이가 있을지언정 그것이 가지는 의미는 언제나 명확하다. 오백삼십밀리세컨드를 주기로 하는 지금의 프롬프트. 어쨌거나 달라질 것은 없다. 무언가 적어야 한다. 엔터키와 함께 행갈이가되고 프롬프트가 제자리로 돌아오기까지 나는 무언가를 고민해야한다. 그래야 의미가 있다. 그러나 나는 검은바탕위의 그것에 쉽게 압도된다. 아니 압도된다고 느낀다. 결국 그것은 나 자신에 대한 도전이고 다짐이고, 또 세상을 향한 외침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떤 선문답. 결국 다 비슷비슷하고 고만고만한 재미없고 별볼일 없는 이야기들. 애초에 정답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무언가를 적어야한다는 강박증이 시작된지 몇십분이 흘렀다. 나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 1악장을 반복해서 들으며 애써 프롬프트를 외면한다. 그런 면에서 윈도우는 편리하다. 윈도우의 시대가 시작되고 프롬프트는 화려한 그래픽유저인테페이스의 뒷쪽 깊은 곳으로 숨어버렸다. 프롬프트를 통해 컴퓨터에 명령하던 시절은 가고 우린 마우스에 손을 얹고 마우스 커서에 집중할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이름만큼 훌륭하진 않지만 우리는 수많은 윈도우를 통해 쉽게 도망칠수 있게 되었다. 이른바 멀티테스킹은 그런면에서 위대하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강박증은 쉬 가시지 않는다. 어째서 나 자신에게 이토록 질문들을 던져야 하는가. 애초에 대답따위는 모른다. 그저 나 자신을 자극하는 여러가지 방법중에 하나를 선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컴퓨터앞에 구부정하게 앉아 무의미하게 시간을 축내며, 인생을 축내며 세상과 소통하고 있노라 소리친다. 자위한다. 그러나 그 누가 듣고있으랴.
결국 작업표시줄에 그득한 창목록에서 나는 처음의 그것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오백삼십밀리세컨드를 주기로하는 프롬프트와 마주한다. 프롬프트의 명멸. 모든 것의 시작은 거기서 부터다.

2007/08/19 06:35 2007/08/19 06:35
top

Trackback Address :: http://xxycho.net/ttnew/trackback/28

Write a comment


1 ... 11 12 13 14 15 16 17 18 19 ... 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