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양.

CUT 2005/09/25 03:24
담배가 피우고 싶었다. 아마도, 필립모리스였겠지.

난 병원 앞 토큰박스로 향한다. 토큰박스라면 민증을 깔필요도 없을것 같았다. 그저 천삼백원을 작은 구멍으로 밀어넣고, 필립모리스요- 라고 작게 말하면 될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일이 그렇게 쉬운것만은 아니다. 의외라고 할것도 없이, 정문을 지키는 경비원이 나를 막아선 것이다. 사정을 설명할것도 없이 그는 완강하다. 사실 환자복 차림의 나를 그냥 그렇게 병원을 들락거리게 한다는 것은 그의 직업윤리에 위배되는 것일태니까. 난 그냥 돌아설수밖에 없었다. 입으론 욕을 하고 있었던가?

몇 시간을 금단현상에 시달리면서 밤이 오길 기다렸다. 가족들이 집으로 돌아간 후에야, 난 환자용 엘리베이터 앞에 선다. 아마 응급실 쪽으로 가면 담배를 빌릴수 있으리라- 하는 기대에 막혔던 코가 뚫리고, 흐릿하던 정신이 말끔해졌다. 그렇게 환자용 엘리베이터 앞에 서있다가, 그녀를 만났다. 정리되지 않은 단발 머리에 퀭한 눈, 삐쩍 마르고 떨리는 손, 그리고 느릿느릿한 걸음. 무엇보다도 퀭한 눈속에 눈동자를 미쳐 따라가지 못하는 푸른색 컬러렌즈가 무척이나 기괴했다. 그녀는 그런 이상한 눈으로 나를 몇번인가 쳐다보았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그녀는 이상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난 애써 무시했다. 왠지 환자 냄새가 물씬 풍기는 저 여자와 같은 환자복을 입고있다는 것이 속상했으니까. 하지만, 그런 마음은 엘리베이터가 1층에 이르고, 문이 열리는 순간. 사그라들고 만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내가 바쁘게 발을 옮기는 찰나 그녀의 주머니에서 비죽히 튀어나온 담배 두갑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 저 담배 한가치만 빌릴수 있을까요?

그녀는 이상하게 웃으며 따라오라는 손짓을 한다. 약간은 부자연 스러운 그 손짓. 나라는 말초적 인간은 순간의 만족을 위해 그녀의 뒤를 따른다. 아니, 그녀의 옆을 나란히 걷는다. 이미 10시를 훌쩍 넘겨버려서, 한적해져버린 병원 밴치 쪽으로 느릿느릿한 발걸음을 옮긴다. 바쁘게 걷고 싶었지만, 그녀의 발걸음이 너무 위태로웠기 때문에 난 느리게 걸을수 밖에 없다. 초강력 본드가 붙은것 같은 그녀의 다리는 한걸음 한걸음 옮기는것이 몹시나 힘들어 보였기 때문이다. 발을 때는순간 발목부터 무릅까지, 아니 허벅지까지가 심하게 떨렸고 몇번인가 넘어지려고 하는것을 내가 일으켜 세워야 했으니까.
밴치에 이르자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담배곽을 열고 나에게 담배를 권한다. 말보로 레드. 그다지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에겐 선택권이 없으니까. 웃으면서 담배를 집어든다. 아니 곧바로 입에 물고 불을 당긴다. 종이가 짜글거리는 소리를 내고, 따뜻한 공기가 내 입안을 거쳐, 순간적으로 폐에 도달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니코틴이 충만해 진다. 내 표정을 읽은 일까. 그녀가 이상하게 웃으며 말했다.

- 니가.. 담배를 피우고.. 싶을 것 같았.. 어..

그 후로 몇번인가 그녀의 담배를 빌려피웠다. 그리고 말하차면 친구처럼 지냈는데, 그녀의 부정확한 발음과 전혀 매력적이지 않은 목소리는 언제나 나에게 불안감을 선사하곤 했었다. 그녀의 특이사항이 그녀의 병때문이란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그녀의 병이 '뇌암'이란 사실을 알게된 것은 훨씬 나중의 일이다.

병원에선 모두가 친구가 되곤하지만, 난 병원을 퇴원하고도 두 번인가 그녀를 찾아갔었다. 두번째 병문안을 갔을 땐, 그녀의 침대는 이미 다른 사람의 차지가 되어있었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아니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그 사람이 문득 떠오른 것은 아마도 지금의 극심한 두통탓이다.
2005/09/25 03:24 2005/09/25 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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